궤도에 오르기까지, 일곱 개의 기록 — 디캠프 배치 4기 디데이 후기
2026.11.02
대기업의 개발 요청을 거절한 창업가가 있었습니다. 첫 투자금 대부분을 우주 실험에 투입한 창업가도 있었습니다. 일곱 기업이 성장의 고비에서 내린 선택은 달랐습니다.
10월 29일 디캠프 마포에서 열린 ‘d.day: founders summit – 궤도에 오르기까지, 일곱 개의 기록’에서는 배치 4기 딥테크 창업가 7명이 성장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선택을 나눴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창업가와 투자자 등 약 300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동안 배치 디데이가 기업들의 성과를 알리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그 성과를 만들기까지 쌓아 온 경험을 생태계와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우주선이 궤도에 오르려면 발사 순간의 추진력뿐 아니라 방향을 조정하고 끊임없이 버텨야 하듯, 일곱 기업도 성장 과정에서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버티며 다음 단계를 준비해왔습니다. ‘증명’, ‘전환’, ‘확장’. 일곱 창업가는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 길을 택했을까요?

증명 | 매출과 제품 없이 시장을 설득한 비결
코스모비 — 작은 실증이 연 설득의 문
제품도 매출도 없던 시기, 무엇으로 고객을 설득해야 할까요? 위성의 전기추진시스템을 개발하는 코스모비 박동하 대표는 창업 초기 기술의 필요성과 팀의 개발 역량을 모두 설득해야 했습니다. 전기추진 기술이 왜 필요한지, 아직 제품도 없는 학생 창업팀이 실제로 개발하고 납품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는 스페이스X의 활용 사례를 들어 기술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한편, 제품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코스모비는 지난 누리호 4차 발사에 실린 큐브위성으로 자체 개발 전기추진시스템을 우주에서 실증했습니다. 우주에서 작동을 증명한 기술은 그 순간부터 시장에서의 신뢰와 가격 협상력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고객을 만나면서 제품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큐브위성용 추진기를 개발했지만, 고객을 만나보니 더 높은 전력과 성능이 필요한 100~300kg급 소형위성 쪽 수요가 더 컸습니다. 이에 맞춰 더 크고 성능이 높은 제품으로 개발 전략을 수정하며 시장에서 쓰일 제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디어오션 — 시장이 달라지면 증명의 기준도 달라진다
이미 검증된 설계 방식이 있는데 왜 굳이 AI로 바꿔야 하나요? 기계 설계 자동화 AI 소프트웨어 ‘메테우스(METHEUS)’를 개발하는 아이디어오션 김중호 대표가 고객을 설득하며 마주한 질문은 기술의 성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설명만으로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웠기에, 투박하더라도 가능한 선에서 직접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설계안을 생성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까지 확인시켜줘야 다음 논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을 만나는 동안 선행 개발에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사람과 설계 업무를 반복하는 사람의 요구가 다르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아이디어오션은 설계 협력사 등으로 고객을 넓히고 서비스 구성을 바꿨습니다. 김 대표는 다음 과제로 고객의 투자 대비 수익률을 높이면서 회사도 수익을 내는 구조를 증명하는 일을 꼽았습니다.

전환 | 고객의 관심을 실제 계약으로 이끈 선택
퍼스트랩 — 고객을 기준으로 사업 방식을 바꾸다
칭찬은 넘쳤지만 구매는 없었습니다. 초음파 기술로 산업 공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퍼스트랩의 황보민성 대표는 기술을 인정받고도 구매로 이어지지 않던 시기를 겪었습니다.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을 시장을 일본에서 찾은 뒤에는 현지에 자원을 투입하는 시점이 고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출장으로 고객을 만나고 매출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진출한 제조기업들은 첫 매출까지 3~4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1년 6개월에서 2년가량 현지에서 활동하며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황 대표는 법인 설립을 앞당겼습니다.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자본을 먼저 투입해 첫 매출까지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법인을 설립한 퍼스트랩은 올해 초 대기업에 장비를 납품하며 매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테파로보틱스 — 어디서나 쓰일 하나의 제품에 집중하다
창업 초기 대기업의 개발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로봇이 다양한 물체를 집고 다루는 동작을 AI로 학습시키는 테파로보틱스의 박정혁 대표에게는 특정 기업에만 필요한 기술이 아닌 범용 로봇 제어 AI를 만들겠다는 방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 완성차 업체가 제시한 한 달 반의 납기에는 도전했습니다. 공장이 멈추는 시점에 맞춰 자사 기술을 양산 라인에 적용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완성차 시장에는 나중에 진입할 계획이었고 주어진 시간도 빠듯했지만, 박 대표는 기회라고 판단해 시장 진입 계획을 앞당겼습니다. 범용 제품이라는 개발 방향을 지키면서 받아들인 도전은 실제 양산 라인 적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스페이스린텍 — 고객이 있는 곳으로 직접 향하다
2년 만에 첫 엔젤 투자를 받았는데, 우주 실험을 하려면 그 투자금 대부분을 써야 했습니다. 미세중력 환경에서 제약 연구와 생산을 수행할 장치를 개발하는 스페이스린텍의 윤학순 대표는 추가 투자를 기다리며 더 버틸지, 지금 실험을 감행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윤 대표는 실제 우주에서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투자금 대부분을 투입한 실험은 성공했고, 사업의 중요한 기점이 됐습니다. 국내 제약사들과 협업을 진행해온 스페이스린텍은 올해 4월 보스턴에도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시장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확장 | 반복 가능한 성장 구조를 만든 경험
갭텍 — 오래 성장할 회사를 만드는 사람들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택했습니다. 산업 현장의 유해가스와 온실가스를 처리하는 갭텍의 프로젝트는 짧으면 3개월, 길면 2년이 걸립니다. 대형 수주에는 자금과 보증 등의 부담이 따르는 데다 숙련된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데도 최소 5년이 필요해, 사업을 넓히려면 사람을 키우는 시간도 함께 생각해야 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운영한 주 4.5일제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약속과 신뢰였습니다. 회사가 처음 정한 조건을 지키는 만큼 구성원들도 그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맡은 일을 마무리하려 노력했습니다. 김 대표는 직원들 역시 대표의 신뢰와 윤리를 평가할 것이라며, 자신도 약속을 지켜야 숙련된 사람들이 오래 함께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피트인 — 어려운 시장에서 검증하고, 확신이 서면 속도를 높이다
가장 어려운 시장에서 가장 먼저 검증했습니다. 전기택시 등의 배터리 구독과 교체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피트인은 첫 스테이션을 안양에 설치했습니다. 당시 법인 전기택시의 충전요금이 낮아 경쟁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지만, 그곳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면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창업 초기 3년은 기술과 서비스를 검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김세권 대표 혼자 C레벨 직함을 사용하며 현장의 문제를 직접 해결했습니다.
사업에 확신이 선 뒤에는 여러 거점에서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필요해졌습니다. 피트인은 3년간 함께 성장한 내부 인재를 발탁하고 부족한 역량은 외부에서 영입해 C레벨 체제로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파운더스 라운드테이블 | 상장과 매각을 먼저 겪어 본 멘토 7인과의 60분
본 행사 이후, 배치 4기 기업들의 성장을 함께해 온 전담 멘토 7인이 참여하는 파운더스 라운드테이블이 이어졌습니다.
- 최유환 — 글로벌 컨설턴트 출신, 헬스케어 플랫폼 창업 후 Exit
- 채명수 — AI 모델 최적화 기술로 기술특례 상장
- 홍기현 — 세 번의 창업, 두 번의 매각과 한 번의 상장
- 정지성 — 박사 과정 중 창업, 8년 만에 코스닥 상장
- 정성훈 — 보행 재활 로봇 기술로 2024년 기술특례 상장
- 권혁찬 — 쏘카 동남아 진출 주도, 42dot 자율주행 사업 총괄
- 황희철 — 딥테크 창업 후 한화 매각, 現 VC 그룹장
라운드테이블은 본 행사 참석자 중 신청을 받아 선정된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와 C레벨,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상장과 매각을 먼저 겪어 본 멘토들은 포장된 성공담 대신 사업을 성장시키며 겪었던 고민과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다음 성장 궤도를 향해
배치 4기 일곱 기업이 걸어온 길은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움직이는 게 답이었고, 누군가는 오래 기다리는 게 답이었습니다. 같은 기업 안에서도 제품을 검증할 때와 시장을 넓힐 때, 조직을 바꿀 때 필요한 선택은 달라졌습니다.
창업에는 모두에게 통하는 정답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다른 기업의 답을 따르기 전에 내 회사 앞에 놓인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일곱 기업이 나눈 경험과 판단의 근거가 다음 선택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디캠프 배치 10기 모집이 12월 초 시작됩니다. 이번 무대에 오른 일곱 팀도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다음 성장을 준비 중인 딥테크 스타트업이라면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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